사람의 손처럼 생긴 로봇이 손가락을 다리처럼 움직이며 바닥을 돌아다닌다면 어떨까?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장면이 실제 로봇공학 연구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ETH Zurich) 연구진은 손가락 다섯 개를 이용해 스스로 이동하고, 넘어진 상태에서 다시 일어나며, 주변 물체까지 조작하는 자율 로봇 손을 개발했다. 아담스 패밀리의 캐릭터 '씽(Thing)'을 떠올리게 하는 이 기술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로봇의 이동 방식과 작업 능력을 결합하려는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손가락으로 걸어 다니는 자율 로봇 손이란?
일반적인 로봇 손은 로봇 팔 끝에 부착되어 물체를 집거나 옮기는 역할을 한다. 사람의 손과 마찬가지로 손가락을 구부리고 펴면서 물체를 잡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이동하는 기능은 보통 갖추지 않는다. 그러나 ETH Zurich 연구진은 기존 상용 로봇 손을 활용해 손가락 자체를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2026년 9월 공개된 'Fingers as Legs: Learning Self-Supported Locomotion and Manipulation with an Anthropomorphic Hand' 연구에서는 인간형 로봇 손이 별도의 바퀴나 다리 없이 스스로 이동하는 기술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로봇 손에 전원과 연산 장치를 탑재하고, 손가락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인공지능 모델을 학습시켰다. 이를 통해 외부 전원 케이블에 의존하지 않고 이동하는 실험용 시스템을 구현했다.
이 로봇의 특징은 하나의 손가락 구조가 이동과 물체 조작이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손가락이 바닥에 닿으면 다리처럼 몸체를 지탱하고, 물체를 다룰 때는 일반적인 로봇 손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는 이동 장치와 작업 장치를 별도로 구성하는 기존 로봇 설계와 차이가 있다.
로봇 손은 어떻게 다섯 손가락으로 걸을까?
사람의 손은 원래 걷기에 적합한 구조가 아니다. 다섯 손가락의 길이가 서로 다르고 엄지손가락은 다른 손가락과 방향도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손가락을 단순히 순서대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안정적인 보행을 구현하기 어렵다.
로봇 손이 움직이려면 바닥에 닿아 있는 손가락들이 몸체의 무게를 지탱해야 한다. 동시에 일부 손가락은 위치를 바꾸면서 몸체를 앞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지하는 손가락과 이동하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적절하게 조정되지 않으면 로봇이 넘어지거나 방향을 잃을 수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손가락의 위치와 움직임을 고려하는 제어 방식을 개발했다. 손가락마다 자연스러운 지지 위치를 설정하고, 그 위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전진할 수 있도록 학습시킨 것이다.
특히 손가락의 앞뒤 움직임과 좌우 움직임에 서로 다른 제약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손가락이 불필요하게 옆으로 벌어지는 동작을 줄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을 유도했다. 이러한 방식은 손가락의 비대칭적인 구조를 고려하면서 보행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접근으로 볼 수 있다.
강화학습으로 걷는 방법을 익히는 원리
로봇 손이 움직이는 방법을 학습하는 데 사용된 핵심 기술은 강화학습이다. 강화학습은 인공지능이 특정 행동을 수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이나 불이익을 받으면서 적절한 행동 방식을 찾아가는 학습 방법이다. 로봇공학에서는 걷기와 균형 유지처럼 움직임의 조합이 복잡한 문제에 활용된다.
이번 연구에서는 실제 로봇을 처음부터 반복해서 넘어뜨리는 대신 컴퓨터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움직임을 학습시켰다. 이때 실제 하드웨어에서 측정한 특성을 시뮬레이션에 반영해 가상 환경과 실제 로봇 사이의 차이를 줄이고자 했다.
학습 과정에서는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행동에 보상을 제공하고, 불필요하게 흔들리거나 급격하게 움직이는 행동에는 불이익을 주는 방식이 적용됐다. 또한 손가락마다 적절한 위치를 유지하도록 유도하는 제약을 추가했다.
다만 강화학습을 활용했다는 사실이 로봇이 모든 환경에서 스스로 새로운 행동을 발명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 실험에서는 이동이나 물체 조작 등 작업별로 학습된 제어 모델을 사용했다. 따라서 자율적인 움직임과 범용적인 지능을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실제 실험에서 확인된 이동 능력과 작업 성능
연구진은 학습된 제어 방식을 실제 로봇 손에 적용해 다양한 움직임을 시험했다. 평평한 바닥뿐 아니라 표면의 특성이 다른 여러 환경에서도 이동 능력을 확인했다. 로봇은 전진과 방향 전환을 수행했으며, 넘어진 뒤 다시 자세를 회복하는 동작도 보여줬다.
공개된 실험 결과에 따르면 로봇 손은 총 14종류의 표면에서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고, 평균 이동 속도는 초당 약 9cm로 보고됐다. 자세 회복 실험에서는 25회 중 21회에 성공했다. 또한 외부 카메라의 영상 정보를 활용해 작은 물체를 목표 위치까지 밀어 이동시키는 작업도 수행했다.
| 실험 항목 | 확인된 내용 | 기술적 의미 |
|---|---|---|
| 자율 이동 | 손가락으로 몸체를 지탱하며 이동 | 별도 보행 장치 없이 이동 가능성 확인 |
| 다양한 표면 | 14종류의 표면에서 이동 시험 | 서로 다른 바닥 조건에 대한 적응 가능성 |
| 이동 속도 | 평균 약 9cm/s | 실험 조건에서의 이동 성능 확인 |
| 자세 회복 | 25회 중 21회 성공 | 넘어진 상태에서 복구하는 능력 확인 |
| 키보드 조작 | 학습된 동작으로 연속적인 키 입력 수행 | 이동과 손가락 작업의 결합 가능성 |
| 물체 이동 | 외부 영상 정보를 이용해 물체를 목표 지점으로 이동 |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기능 확인 |
특히 물체 이동 실험에서는 약 41g의 정육면체 물체를 최대 40cm 떨어진 목표 지점까지 밀어 이동시키는 작업을 15회 연속 수행했다. 다만 이 실험에는 머리 위에 설치된 카메라의 영상 정보가 사용됐다. 따라서 모든 주변 환경을 로봇 손 자체의 센서만으로 인식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번 연구의 성과는 손가락으로 이동하는 동작을 구현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이동에 사용한 동일한 손가락으로 주변 물체를 조작하는 기능까지 보여줬다는 데 있다. 다만 실험실에서 검증된 동작과 실제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장기간의 안정적인 자율 작업 사이에는 추가적인 기술 검증이 필요하다.
아담스 패밀리 씽과 실제 로봇 손의 차이
손가락으로 움직이는 로봇을 보면 아담스 패밀리의 캐릭터 씽을 떠올리기 쉽다. 씽은 몸통 없이 손만 존재하는 것처럼 등장하며, 손가락을 이용해 이동하거나 물건을 전달하고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캐릭터다. 이러한 모습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로봇 손과 시각적으로 닮아 있다.
그러나 영상 속 씽과 실제 로봇 손은 구현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과거 영상 제작에서는 배우의 손을 세트 안에 배치하거나, 화면에 보이는 팔을 후반 작업으로 제거하는 방법이 사용됐다. 반면 실제 자율 로봇 손은 내부 모터와 제어 장치를 이용해 손가락을 움직인다.
1960년대 아담스 패밀리 TV 시리즈에서는 러치 역으로 알려진 테드 캐시디가 씽의 연기도 맡았다. 당시에는 세트에 마련된 구멍을 통해 손과 팔 일부를 보여주는 방식이 활용됐다. 이후 영화 제작에서는 배우의 손과 특수 분장, 시각효과 등을 결합해 몸에서 분리된 손처럼 보이도록 표현했다.
현대 로봇 손은 이러한 영화적 장면을 실제 기계 장치로 구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 속 캐릭터처럼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거나 사람과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는 수준까지 도달한 것은 아니다. 현재 공개된 연구는 주로 이동과 제한된 물체 조작 능력을 검증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자율 이동 로봇 손의 산업적 활용 가능성
독립적으로 이동하는 로봇 손은 기존 로봇 팔이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인 로봇 팔은 관절의 움직임 범위와 팔 전체의 크기 때문에 좁은 틈이나 복잡한 장비 내부에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손 자체가 이동할 수 있다면 이러한 공간적 제약을 일부 줄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응용 가능성을 검토해볼 수 있다.
- 산업 설비 점검: 기계 내부의 좁은 공간에 접근해 특정 부품이나 조작 장치를 다루는 작업
- 재난 구조: 대형 로봇이 진입하기 어려운 틈이나 제한된 공간을 탐색하는 작업
- 원격 유지보수: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에 있는 버튼이나 스위치를 조작하는 작업
- 서비스 로봇: 주변 물건을 이동시키거나 좁은 장소에서 간단한 보조 작업을 수행하는 기능
- 모듈형 로봇: 로봇 본체의 일부가 독립적으로 이동하고 작업한 뒤 다시 결합하는 구조
다만 이러한 분야는 현재 실험으로 모두 입증된 활용 사례가 아니라 앞으로 연구할 수 있는 응용 방향이다. 실제 작업에 투입하려면 환경 인식과 위치 추정, 물체 조작의 정확도, 장애물 회피 능력 등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특히 재난 현장이나 산업 시설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단순히 걷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먼지와 습기, 불규칙한 바닥,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에 대응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현재의 기술 성과를 곧바로 현장 활용이 가능한 완성형 로봇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상용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기술적 한계
손가락으로 이동하는 방식은 독특하지만 그만큼 해결해야 할 문제도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내구성이다. 물체를 잡도록 설계된 손가락 관절이 반복적으로 몸체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면 일반적인 물체 조작과 다른 하중을 받게 된다.
이러한 하중이 장기간 누적될 경우 관절과 구동 부품의 마모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손끝이 바닥과 반복적으로 접촉하기 때문에 마찰 조건이나 표면 상태에 따라 이동 성능이 달라질 수 있다.
실용화를 위해 검토해야 할 주요 과제는 다음과 같다.
- 전력 관리: 내장 배터리로 얼마나 오랫동안 이동하고 작업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 환경 인식: 외부 카메라에 의존하지 않고 장애물과 목표 물체를 인식하는 기능이 필요하다.
- 관절 내구성: 반복적인 보행으로 발생하는 하중과 마모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 지형 대응: 계단과 높은 장애물, 경사진 표면 등에서의 이동 능력을 추가로 검증해야 한다.
- 작업 정확도: 이동 중에도 작은 물체를 안정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제어 성능이 필요하다.
- 안전성: 사람과 가까운 거리에서 작동할 때 충돌이나 끼임 사고를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로봇 손이 자율적으로 움직인다는 표현도 구체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시스템은 내장된 전원과 연산 장치를 이용해 학습된 동작을 수행할 수 있지만, 모든 작업을 외부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범용 로봇은 아니다. 특히 외부 카메라가 필요한 작업에서는 완전한 독립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벽을 오르거나 복잡한 구조물을 자유롭게 기어오르는 능력 역시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바닥에서 안정적으로 이동하는 기술이 곧 수직 표면을 등반하는 능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로봇 손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기술의 미래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부분은 로봇의 부품마다 정해진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 기존 설계 관점을 확장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로봇의 다리는 이동을 담당하고 손은 물체 조작을 담당한다. 그러나 손가락 자체를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면 하나의 부품이 상황에 따라 여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비슷한 방향의 연구는 다른 형태로도 진행되고 있다. 2026년 1월 발표된 분리형 로봇 손 연구에서는 대칭적인 손가락 구조와 탈착 장치를 활용해 로봇 팔에서 손이 분리된 뒤 이동하고, 물체를 회수한 다음 다시 결합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이는 기존 상용 인간형 로봇 손을 이용해 자율 이동을 구현한 ETH Zurich의 연구와 설계 접근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앞으로는 손가락의 이동 능력에 더 정교한 감각 센서와 환경 인식 기술을 결합하는 연구가 중요해질 수 있다. 로봇이 주변 환경을 직접 파악하고 물체의 위치와 형태에 맞춰 움직임을 조정할 수 있다면 활용 범위도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러한 기술이 실제로 얼마나 유용한지는 기존 이동 로봇이나 로봇 팔보다 어떤 작업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이동 속도와 작업 정확도뿐 아니라 비용, 내구성, 유지보수 부담까지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손가락으로 걷는 자율 로봇 손은 공상과학 속 움직임을 현실에서 구현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기술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의미는 로봇의 손과 다리처럼 구분되어 있던 기능을 하나의 기계 구조에 통합할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 있다. 향후 연구를 통해 이러한 다기능 구조가 실제 작업 환경에서도 기존 방식보다 유리한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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