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TV를 켰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앱, 추천 콘텐츠와 검색 결과는 이용자가 자유롭게 선택한 결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운영체제 사업자가 설계한 화면과 알고리즘의 영향을 받는다. 유럽의 주요 방송·영상·라디오 단체들은 이러한 영향력이 커지면서 일부 스마트 TV 운영체제와 음성 비서가 콘텐츠 사업자와 시청자를 연결하는 관문이 됐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유럽연합이 디지털시장법을 적용해 플랫폼의 자사 서비스 우대와 폐쇄적인 유통 구조를 감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방송사들이 EU에 요구한 내용
2026년 3월 유럽의 방송·영상·라디오 관련 단체들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경쟁 담당 수석부위원장에게 공동 서한을 보냈다. 참여 단체에는 공영방송을 대표하는 조직뿐 아니라 Canal+, ITV, Paramount+, NBCUniversal, Disney, Warner Bros. Discovery, Sky 등 대형 상업 미디어 기업이 소속된 협회도 포함됐다. 따라서 이 움직임은 공익적 미디어 다양성 문제와 대형 콘텐츠 기업의 사업적 이해관계가 함께 얽힌 요구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공동 서한의 핵심 요구는 주요 커넥티드 TV 운영체제와 음성 비서 사업자를 디지털시장법의 게이트키퍼로 지정하는 것이다. 정량적 이용자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바로 지정하기 어렵다면 시장 영향력과 생태계 지배력을 평가하는 별도의 조사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성 비서와 같이 기존 기준으로 사업 이용자를 계산하기 어려운 서비스에 대해서는 사업 이용자의 정의를 기술 중립적으로 폭넓게 해석할 것도 요구했다.
- 주요 스마트 TV 운영체제 사업자의 게이트키퍼 지정 검토
- 정량 기준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질적 영향력을 평가하는 시장조사 실시
- 음성 비서와 새로운 인터페이스에 맞는 사업 이용자 기준 검토
- 콘텐츠 검색·추천·앱 배치 과정의 공정성과 경쟁 가능성 확보
스마트 TV 운영체제가 게이트키퍼로 불리는 이유
과거의 TV는 방송 신호나 외부 입력을 보여주는 화면에 가까웠지만 현재의 스마트 TV는 앱스토어, 광고, 검색, 추천, 결제와 시청 기록 수집 기능이 결합된 플랫폼이다. 이용자가 어떤 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지, 검색 결과에서 어떤 콘텐츠가 먼저 나오는지, 리모컨에 어떤 서비스 전용 버튼이 배치되는지도 플랫폼 사업자의 정책과 계약에 따라 달라진다. 화면을 제조한 기업이 콘텐츠 유통 경로까지 관리하면서 TV 운영체제는 단순한 기기 소프트웨어 이상의 영향력을 갖게 됐다.
Google TV와 Android TV, Amazon Fire TV, Samsung Tizen과 같은 운영체제는 수많은 TV와 스트리밍 기기에 탑재된다. 운영체제 사업자가 동영상 서비스나 광고 사업도 함께 운영하면 자사 서비스를 유리하게 노출할 유인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부당한 자사 우대가 발생했는지는 개별 사례와 자료를 통해 확인해야 하지만, 경쟁 서비스의 접근 조건을 결정하는 사업자가 동시에 경쟁자로 활동한다는 구조적 문제는 존재한다.
| 통제 요소 | 경쟁에 미칠 수 있는 영향 | 이용자가 체감하는 사례 |
|---|---|---|
| 홈 화면 앱 배치 | 특정 앱이나 유료 제휴 서비스의 노출 확대 | 사용하지 않는 앱이 첫 화면에 반복적으로 표시됨 |
| 통합 검색 | 일부 콘텐츠 제공자의 결과가 우선 노출될 가능성 | 같은 작품도 특정 서비스의 구매·구독 경로가 먼저 나타남 |
| 추천 알고리즘 | 추천 기준이 불투명하면 자사 서비스 우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움 | 시청 의도와 관계없는 프로그램이나 광고가 계속 제시됨 |
| 앱스토어와 기술 규격 | 앱 등록 비용과 기능 접근 조건이 신규 사업자의 진입장벽이 될 수 있음 | 일부 서비스가 특정 TV에서 제공되지 않거나 기능이 제한됨 |
| 음성 비서 | 음성 명령을 어느 앱과 콘텐츠로 연결할지 플랫폼이 결정 | 서비스 이름을 지정하지 않으면 기본 앱이 자동 실행됨 |

디지털시장법의 지정 기준과 현재 상태
디지털시장법은 규모가 큰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업에 동일한 의무를 부과하는 법은 아니다. 유럽연합 시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기업이 소비자에게 도달하기 위한 중요한 관문을 제공하며, 그 지위가 견고하고 지속적이라고 판단되는 핵심 플랫폼 서비스가 규제 대상이 된다. 일정한 매출과 기업가치, 유럽연합 내 월간 최종 이용자 4,500만 명, 연간 사업 이용자 1만 명 등의 기준은 게이트키퍼 해당 여부를 추정하는 지표로 사용된다.
정량 기준을 충족하지 않아도 실제 시장 구조를 조사한 결과 중요한 관문으로 판단되면 질적 기준에 따라 지정할 수 있다. 반대로 이용자 수 기준을 넘었다고 하더라도 사업자가 해당 서비스가 실질적인 관문이 아니라고 입증하면 지정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회사 전체가 아니라 개별 핵심 플랫폼 서비스의 기능과 시장 영향력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구조다.
2026년 6월 말 기준 공식 지정 목록에는 Alphabet, Amazon, Apple, Booking, ByteDance, Meta와 Microsoft가 제공하는 23개 핵심 플랫폼 서비스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Google TV나 Amazon Fire TV와 같은 TV 운영체제, Samsung Tizen, Alexa와 Siri 같은 음성 비서는 별도의 핵심 플랫폼 서비스로 지정돼 있지 않다. Alphabet과 Amazon, Apple이 다른 서비스에서 게이트키퍼로 지정돼 있더라도 모든 제품이 자동으로 디지털시장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 TV 운영체제를 게이트키퍼로 지정하자는 요구는 이미 확정된 규제가 아니다. 방송업계가 유럽연합에 조사와 지정을 요청한 상태이며, 개별 운영체제의 이용자 규모와 사업자 의존도, 자사 우대 가능성에 대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
규제가 소비자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
TV 운영체제가 게이트키퍼로 지정되면 소비자가 곧바로 광고 없는 TV를 이용하게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디지털시장법의 중심 목적은 광고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대형 플랫폼이 자신의 관문 지위를 이용해 경쟁을 제한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구체적인 적용 범위는 지정되는 핵심 플랫폼 서비스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요구하는 준수 조치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기존 디지털시장법의 원칙이 스마트 TV에도 적용된다면 자사 서비스 우대 제한, 기본 앱 변경, 불필요한 사전 설치 앱 삭제, 제3자 서비스와의 상호운용성 등이 주요 쟁점이 될 수 있다. 검색과 추천에서 유료 배치나 자사 콘텐츠가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는지 더 명확하게 표시하도록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변화는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제공할 수 있지만 메뉴와 설정이 복잡해지는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
- 사용하지 않는 기본 앱을 쉽게 삭제하거나 숨길 수 있는 기능
- 검색·추천 결과에서 자사 서비스와 경쟁 서비스를 공정하게 취급하는 기준
- 기본 동영상 서비스와 음성 명령 연결 앱을 이용자가 선택하는 기능
- 경쟁 앱이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능에 동등하게 접근하는 구조
- 광고성 추천과 일반 콘텐츠 추천을 구분할 수 있는 표시
스마트 TV 광고와 강제 업데이트도 금지될까?
스마트 TV 홈 화면 광고, 전용 스트리밍 버튼과 사용자가 원하지 않는 업데이트에 대한 불만은 이번 논쟁과 관련은 있지만 동일한 문제는 아니다. 디지털시장법에 따른 게이트키퍼 지정만으로 기기 내부의 모든 광고가 금지되거나 제조사가 업데이트를 제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광고 표시 방식과 개인정보 활용, 기기 구매 후 기능 변경은 소비자보호법, 개인정보보호 규정과 계약의 공정성 등 다른 제도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 소비자가 기대할 수 있는 조치 | 이번 요구에 직접 포함됐다고 보기 어려운 조치 |
|---|---|
| 자사 앱과 콘텐츠의 부당한 우선 노출 제한 | 스마트 TV의 모든 광고를 일괄적으로 금지 |
| 경쟁 앱의 설치와 기능 접근 조건 개선 | 제조사의 보안·기능 업데이트 자체를 금지 |
| 기본 서비스와 검색 경로에 대한 이용자 선택 확대 | 모든 TV에서 제3자 운영체제 설치를 의무화 |
| 추천과 유료 배치 기준의 투명성 강화 가능성 | 리모컨의 모든 스트리밍 전용 버튼 제거 |
TV를 인터넷에서 완전히 분리하고 외부 스트리밍 기기나 게임기만 사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모든 이용자에게 적합한 해법은 아니다. 인터넷 연결을 차단하면 광고와 일부 데이터 수집을 줄일 수 있는 반면 보안 업데이트, 앱 지원과 온라인 기능도 제한될 수 있다. 외부 기기 역시 자체 광고와 추천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으므로 단순히 플랫폼을 교체한다고 문제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방송사의 요구도 비판적으로 봐야 하는 이유
방송사와 콘텐츠 기업은 시청자의 선택권만을 위해 규제를 요구하는 중립적인 주체가 아니다. 이들 역시 홈 화면에서 더 좋은 위치를 확보하고 광고와 구독 수익을 늘리려는 사업적 목적을 갖고 있다. 대형 콘텐츠 기업에 유리한 의무를 만들 경우 작은 지역 방송사, 독립 제작사와 신규 스트리밍 서비스가 오히려 추가 비용을 부담할 가능성도 있다.
플랫폼의 자사 우대를 제한한다는 명목으로 기존 방송사에 의무적인 우선 노출권을 부여하면 하나의 게이트키퍼를 다른 게이트키퍼로 대체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공영·지역 콘텐츠의 접근성을 보장하려는 미디어 정책과 상업 방송사의 노출 확대 요구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가 실제로 원하는 앱보다 규제기관이 정한 콘텐츠가 앞에 배치된다면 선택권 확대라는 목적과 충돌할 수 있다.
빅테크의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만으로 방송사의 모든 요구가 공익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규제는 특정 산업의 시장점유율을 보호하기보다 이용자의 선택권과 신규 사업자의 진입 가능성을 넓히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공정한 스마트 TV 규제에 필요한 기준
효과적인 규제를 위해서는 특정 국가나 기업의 출신보다 해당 서비스가 실제로 관문 역할을 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번 요구의 검토 대상에는 미국 기업뿐 아니라 한국 기업이 운영하는 TV 플랫폼도 포함돼 있어 미국 기업만을 겨냥한 제도라고 단순화하기 어렵다. 반대로 외국 기업을 규제한다는 명분만으로 충분한 시장 분석 없이 의무를 확대해서도 안 된다.
- 사용자 통제권: 홈 화면, 기본 앱, 추천과 음성 비서 연결을 이용자가 쉽게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
- 투명성: 광고, 유료 배치와 알고리즘 추천을 구분하고 노출 기준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 비차별성: 자사 콘텐츠와 경쟁 콘텐츠에 적용되는 기술·상업 조건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 상호운용성: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제3자 앱이 핵심 기능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 비례성: 대형 플랫폼을 겨냥한 의무가 소형 제조사와 독립 콘텐츠 사업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
- 검증 가능성: 규제기관과 외부 전문가가 추천·검색 결과의 차별 여부를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EU의 검토 결과와 앞으로의 쟁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6년 4월 발표한 첫 디지털시장법 검토에서 현재의 지정 기준이 대체로 목적에 부합하며 당장 대규모 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스마트 TV 운영체제와 음성 비서의 지정을 즉시 확정하지도 않았지만, 정량 기준과 질적 기준을 이용해 새로운 서비스의 시장 영향력을 계속 감시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따라서 방송사 공동 서한은 법 개정을 곧바로 끌어냈다기보다 향후 시장조사와 개별 서비스 지정 논의에 근거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논쟁의 핵심은 전통 방송과 기술 기업 중 어느 편이 더 선한가를 결정하는 데 있지 않다. TV 화면의 첫 페이지와 검색창을 관리하는 기업이 시청 선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경쟁 서비스가 공정한 조건으로 이용자에게 도달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규제의 기준은 특정 방송사나 플랫폼의 이익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유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기기와 콘텐츠 경로를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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